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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계태엽 오렌지로 보는 ‘갈등 없는 사회’의 그늘, 그리고 우리 아이들의 진짜 자립

    고전 명작을 다시 들여다보면, 과거의 상상력이 현재 우리의 씁쓸한 현실을 소름 돋게 꿰뚫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곤 합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1971년 작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A Clockwork Orange)>가 바로 그런 작품이죠. 오늘은 이 기괴하고 철학적인 영화를 출발점 삼아,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속으로는 병들어가고 있는 현대 사회의 민낯을 짚어보고자 합니다. 더불어 이런 세상에서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깊이 고찰해 봅니다.

    A Clockwork Orange(스탠리 큐브릭, 1971)

    영화 속 주인공 알렉스는 폭력과 범죄를 일삼는 구제 불능의 청년입니다. 국가는 그를 교화하기 위해 ‘루도비코 요법’이라는 극단적인 세뇌 치료를 강행합니다. 폭력적인 충돌이나 분노를 느낄 때마다 극심한 구토와 고통을 유발해 강제로 폭력성을 거세해 버린 것이죠. 결국 알렉스는 누군가 자신을 때리고 짓밟아도 전혀 저항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당하기만 하는 ‘순한 양’이 되어 사회로 돌아옵니다. 겉모습은 유기적인 생명체(오렌지)지만, 속은 시스템이 감아놓은 태엽대로만 움직이는 기계 인형(시계태엽)으로 전락한 것입니다.

    이 영화가 던지는 철학적 화두는 명확하다. 인간의 자유 의지를 박탈하고 강제로 억눌러 만든 ‘선함’과 ‘평화’가 과연 진짜 문명화된 사회의 모습이냐는 묵직한 질문입니다. 안타깝게도 이 소름 끼치는 디스토피아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단면과 너무도 닮아 있습니다.

    갈등이 거세된 현대 사회, 우리는 정말 평화로워졌을까?

    겉으로 보기에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예의 바르고 매너 있는 문명사회에 살고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실상은 어떨까요? 자본시장에서는 비즈니스 관계 단절과 악성 민원이 두려워 애널리스트들의 ‘매도(Sell)’ 리포트가 자취를 감췄습니다. 문화계 역시 마케팅 종속성과 극성 팬덤의 집단적인 사이버 테러가 두려워 날카로운 비평이 사라진 지 오래죠.

    직장이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남과 다른 의견을 내거나 갈등을 일으키는 순간 감당해야 할 ‘사회적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졌습니다. 조금이라도 선을 넘거나 대중의 입맛에 맞지 않는 의견을 내면 소셜 미디어에 영구히 박제되고 조리돌림을 당하는 ‘디지털 주홍글씨’ 사회가 된 것입니다. 갈등과 비판이 두려워 모두가 웃고 있는 척, 순한 양인 척 연기하는 기괴한 가면무도회가 펼쳐지고 있는 셈입니다.

    회피가 낳은 부작용: 수동적 공격성과 파편화

    SeventyFour via Getty Images

    갈등을 피하려다 보니 사람들은 분노를 건강하게 표출하고 조율하는 법을 잊어버렸습니다.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은 ‘수동적 공격성’과 ‘극단적 파편화’ 현상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 부딪히며 대화로 앙금을 푸는 대신, 겉으로는 친절하게 대하면서도 속으로 블랙리스트에 올린 뒤 어느 순간 SNS와 메신저를 ‘차단(Cut-off)’해버립니다. 또한,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만 모여 확증 편향을 키우는 에코체임버(Echo Chamber) 현상은 우리 사회를 극단적인 흑백 논리로 양극화시키고 있습니다. 진짜 평화가 아니라, 폭발하기 직전의 억눌린 분노가 사회 기저에 팽배해 있는 것입니다.

    무균실에 갇힌 아이들, 조율의 기회를 잃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가장 치명적인 영향을 받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아이들입니다.

    과거에는 놀이터나 교실에서 친구들과 치고받고 싸우며 인간관계의 적정선을 자연스럽게 배웠습니다. 화를 내고, 억울함을 토로하고, 화해하는 과정을 겪으며 “내가 이 선을 넘으면 상대방이 크게 상처받는구나”, “내 권리를 지키기 위해 이럴 땐 단호하게 화를 내야 하는구나”를 몸으로 체득했죠. 발달심리학적으로도 이는 아이의 사회성 발달에 필수적인 ‘관계의 예방주사’와 같습니다.

    하지만 요즘 어른들은 아이들을 얄팍한 무균실에 가두려 합니다. 사소한 말다툼이나 오해도 아이들 스스로 해결할 기회를 주지 않고, 부모가 즉각 개입하거나 학교폭력위원회 등 사법적 잣대를 들이밉니다. 현실에서의 갈등 조율을 경험해보지 못한 아이들은 결국 온라인이라는 은밀한 공간으로 숨어듭니다. 대화로 풀 수 있는 문제도 단톡방에서 특정 아이를 은근히 배제하거나 익명으로 저격글을 올리는 등 훨씬 더 기형적이고 잔인한 방식으로 분노를 표출하게 됩니다.

    우리 아이를 ‘단단한 오렌지’로 키우기 위하여

    그렇다면 이 시계태엽 같은 팍팍한 세상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자립시켜야 할까요? 부모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교육은 “절대 싸우지 마, 무조건 양보하고 친하게 지내”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이에게 ‘건강하고 우아하게 화내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분노는 누군가 나의 경계를 함부로 침범했을 때 나를 보호하기 위해 발동하는 가장 자연스럽고 정당한 방어 기제입니다. 아이가 억울한 상황에서도 무조건 참게만 만드는 것은, 영화 속 알렉스처럼 스스로를 지킬 힘이 거세된 무기력한 존재로 전락시키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타인에게 물리적 폭력을 가하거나 욕설을 내뱉는 ‘바바리안’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네가 방금 한 말은 선을 넘었고 나를 매우 불쾌하게 해. 사과해”라고 명확하고 단호하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도록 지지해 주어야 합니다.

    갈등을 덮어두고 회피하려고만 하는 사회는 결국 고이고 썩기 마련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겉으로만 웃는 기계 인형(시계태엽)이 아니라, 때로는 치열하게 부딪히고 정당하게 화도 내면서 타인과 진실하게 연결될 줄 아는 주체적인 생명체(오렌지)로 자라나길 바랍니다.

    참고문헌

    • 스탠리 큐브릭 감독, 앤서니 버제스 원작 소설 <시계태엽 오렌지(A Clockwork Orange)>, 1971.
    •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청소년의 사이버 괴롭힘 실태 및 또래 관계 형성에 관한 연구 보고서’ 내 또래 갈등 및 온라인 매체 활용 양상 참고.
    • 자본시장연구원(KCMI): 국내 증권사 리서치센터 매도 리포트 발간 비율 및 애널리스트 이해상충 관련 이슈 분석 보고서 참고.